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콜롬비아 영화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[[1897년]]에 [[스페인]]을 통해 영화산업이 처음 들어왔다. 콜롬비아는 [[제1차 세계 대전]] 이후인 [[1920년대]] 중반까지 무성영화가 대세를 기록했다. 그러나 [[세계 대공황]]으로 콜롬비아의 당시 최대 영화사였던 Di Domenico가 경영 위기에 봉착하며 영화산업도 같이 덩달아서, 콜롬비아판의 [[한강 정모]] (....)를 하고 말았다. 그러나 이 때인 [[1935년]] 처음으로 콜롬비아는 '''유성영화'''를 찍기 시작했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 이후인 [[1946년]]부터 조금씩 콜롬비아 영화가 성장하기 시작했다. 다만 묘하게 인재 면에서는 옆동네인 브라질 영화에 비해 밀렸기에, 각종콜롬비아 영화목록들을 뒤지다 보면 타국 출신 감독이 의외로 자주 발견된다. 주로 같은 남미대륙의 국가들이나, 이탈리아, 구 소련 합작이 많았다. 때문에 국제적인 인지도는 베네수엘라와 비슷하게 아르헨티나나 칠레에 비해서도 상당히 밀리는 편. 프란세스코 노르덴, 빅토르 가비리아 [* [[네오 리얼리즘]]적인 성향이 강했던 감독으로 작가 출신이다. 콜롬비아 첫 경쟁 초청작인 로드리고 D와 장미 파는 소녀로 [[칸 영화제]]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적이 있다. 장미 파는 소녀는 빈민가 출신인 주연배우들의 비참한 말로로 국내외적으로 충격을 안기기도 했으며, 실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.], 세르히오 카브레라 정도가 자국출신 감독으로 유명하다. 2010년대부터는 [[뱀의 포옹]]과 [[길 위의 새들]]을 감독한 치로 게라가 민속학적인 주제와 장르 영화를 결합하면서 주목받는 중. [[2003년]]에 와서야 자국 영화산업을 진흥시킬 목적의 '영화법' (Cinema Law)이 제정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